1 / 6

4 살박이 아이 32 살 아빠의 운명

내가 이아이의 아빠를 알게 된지가 지금으로부터 1 년 8 개월이 좀 않 된 때이다 . 2009 년 5 월 18 일 이직 후 첫 출근 하던날 유독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그사람 바로 지금의 4 살박이 아빠다 . 이친구는 불과 나보다 3 일 먼저 입사한 한마디로 나보다 직급도 낮고해서 내가 많이 어려웠던것 같아 친근하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 그렇게 이친구와 만남은 시작되었고 , 그해 바쁜 나날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로 접어들 무렵 부쩍 많아진 조퇴 및 지각으로 몇차례 주의를

leo-vaughan
Download Presentation

4 살박이 아이 32 살 아빠의 운명

An Image/Link below is provided (as is) to download presentation Download Policy: Content on the Website is provided to you AS IS for your information and personal use and may not be sold / licensed / shared on other websites without getting consent from its author. Content is provided to you AS IS for your information and personal use only. Download presentation by click this link. While downloading, if for some reason you are not able to download a presentation, the publisher may have deleted the file from their server. During download, if you can't get a presentation, the file might be deleted by the publisher.

E N D

Presentation Transcript


  1. 내가 이아이의 아빠를 알게 된지가 지금으로부터 1년8개월이 좀 않 된 때이다. 2009년 5월 18일 이직 후 첫 출근 하던날 유독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온 그사람 바로 지금의 4살박이 아빠다. 이친구는 불과 나보다 3일 먼저 입사한 한마디로 나보다 직급도 낮고해서 내가 많이 어려웠던것 같아 친근하게 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친구와 만남은 시작되었고, 그해 바쁜 나날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보내고 겨울로 접어들 무렵 부쩍 많아진 조퇴 및 지각으로 몇차례 주의를 주었을때 까지도 이친구는 그 어떤 변명도 나에게 하지 않았다.. 참으로 답답할 뿐더러 도무지 말을 하지 않아 진지하게 다가가기로 마음을 먹고, 이친구를 향해 다가갔다. 현실은 너무도 무섭게 나에게 다가왔다.. 이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무엇을 해야 할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이친구가 했던 말은 이렇다 “ 우리 나은이가 열이 자주 올라가 새벽에 응급실을 가는 경우가 많아 의사에게 물어 보았더니 큰병원가서 진료을 받아 보라고 하더라구요.” “ 그래서 서울에있는 S대학병원을 찾아 몇일 동안 정밀검사를 했는데 그병명이 백혈병이라고 하더라구요.” 4살박이 아이 32살 아빠의 운명

  2. 그러기까지 나는 이친구의 무덤덤함에 놀랄수 밖에 없었다. 나도 초등학교를 다니는 2명의 아이가 있는 아빠인데, 어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해 했다. 그렇게 이친구의 아픔을 알았을때 얼마나 이친구가 힘들고 괴로울까라고 생각 했지만 그 이후부터 내가 이친구를 알게되면서 참으로 파란 만장한 인생의 불운아를 알게 되었다. 그 파란 만장한 인생을 내가 이친구를 통해 들었던 내용만을 진실되게 써보도록 할 것이다.. 충북 충주에서 아주 부류하게도 가난하게도 살지 않았다던 유년 시절은 내가 들은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그래도 꽤나 잘살았던 것으로 생각이든다. 시골이지만 상가 건물을 갖고 있고, 땅도 꽤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친구 초등학교 시절 아버님의 도박인생으로 가진 재산 탕진하고 어머님과 이혼하면서 한순간 집안은 풍비박산에 빚만 늘었다고 한다. 형제라고는 지금 결혼해서 살고 있는 큰누나와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작은 누나와 그리고 이친구 1남2녀의 막내다. 하지만 초등하교 저학년부터 본인의 모든 책임에 대하여는 본인이 알아서 해야하는 그런 상황 이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용돈이 필요하면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어서 옷도 사고 필요한거 사면서 혼자 벌어 사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게 고된 유년 생활을 보내고, 고학년이 되면서 공부도하고 집안 생계도 책임을 지고

  3. 그렇게 혼자 열심히 벌어 국립 야간대학교를 입학을 해 열심히 낮에는 일을 밤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낮에 쌀집을 다니면서 탄탄하게 손님관리를 해 왔으며 그로인해 쌀집을 인수받아 집안 살림과 학교를 마칠수 있었답니다. 졸업 후 월 300~500만원까지 수입을 올리던 쌀가게를 매형에게 인계하고, 본인은 지금의 아내 고향 후배와 결혼하면서 시골을 떠나 안양으로 올라와 열심히 살자고 왔지만 본인 통장에는 잔고400만원으로 300만원에 35만원하는 월세를 얻어 서로 맞벌이를 하면서 매월 수입을 모두 시골에 있는 집에 그것도 처가집마저 똑같은 형편이라 두 가정에 생활비를 똑같이 나누워 주었다고 합니다. 매월 벌어들이는 수입은 시골과 본인들 사는 비용으로 모두 사용되면서 아이를 임신 하면서 아내가 일을 하지 못하자 처자집에서는 생활비가 줄어든다고 임신한 자식을 원망 했다고 합니다. 남들은 자식을 갖게되면 축하도 받고 하는데 오히려 이 가족은 원망을 들었다고…. 그렇게 아이를 낳고 한달 수입 150만원 가량으로 일부는 시골로 그리고 월세며 등등 참으로 힘들게 살아가던 중 아이의 청천벽력 같은 병명을 듣고 이친구는 살아야할 가치판단도 흐려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라고 나에게 말할때 참으로 세상은 불공평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벌써 1년째 백혈병 치료를 하고 있는 아이와 그 이상으로 힘들어 하는 이 가정을 보면 정말 내 자신이 미안함을 느낄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회사동료들도 작게나마 성금을 모아 도움을 주었으나, 턱없이 부족한 병원비에 점점 빚만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항암 치료를 하면서 4살박이의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이 다 빠져 있고, 늘어나는 병원비에 버거워 아빠가 많이 지쳐 있는 듯 합니다

  4. 병원에서 처방된 주사를 맞으러 서울까지 가서 맞아야하는 비용 및 번거러움 때문에 처방된 주사약을 가지고 인근 병원을 찾았더니 주사를 나주는데만도 5만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이부부는 주사 놓는 방법을 배워 집에서 직접 주사를 놓는다고 합니다. 처음 주사를 놓을때 3식구가 모두 엉엉 울다고 하는데, 엄마는 손이 떨려 주사를 놓지 못하고 울었다고, 아빠는 아이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며 울었고, 아이는 그냥 매일 아프게 맞는 주사가 무서워 울었을 것입니다. 너무 힘들어하는 이친구를 데려다 술을 한잔 먹었던 날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나은(아이의 이름)이 때문에 힘들다고 했을때 입니다. 소주 한병이 비어 갈쯤 취기가 약하게 오르면서 그 동안의 힘든 일들을 말로 시작 하면서 그토록 서럽게 우는 모습은 내 평생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니다. 자기가 입고 있던 티로 눈물을 흠치면서 “내가 나은이를 위해 해줄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게 너무 힘듭니다.” 라고 하면서 우는 이친구는 어깨가 들썩들썩 할 정도로 제 앞에서 우는 바람에 주체 할 수 없는 나의 감정도 덩달아 눈물을 흘리게 되더러구요.. 아~~~ 세상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데, 이렇게 착한 친구에게 이런 고통까지 주는 하나님이 정말 원망 스럽기까지 합니다. 작년 여름 이친구 가족들을 불러 인근 산속음식점을 찾아 고기를 먹이려고 찾아가 고기를 먹는데, 정말 이부부는 너무 마른 형이라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하고 나은이를 제 아내가 돌보도록하고 실컷 먹으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많이 먹는 것 처음 보았습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그날밤에 과식으로 고생 했다고 하더라구요

  5. 백혈병을 앓고 있는 가정에서는 먹는 음식 및 주위 환경등이 얼마나 중요하가를 아실 것입니다. 과일 야체등도 모두 익혀야만 먹을 수 있고, 먹어서도 않되는 음식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 가족은 철저하게 나은이를 위한 식단으로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외식이란 꿈을 꿀수도 없는 일인데 어찌보면 얼나마 좋은 기회였겠습니까? 제가 길지 않는 이 글을 쓰게된 계기는 점점 지쳐가는 이 친구에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어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지금은 같은 회사에 종사하는 상관이자 친형처럼 생각을 하고 있지만 실제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 제 마음도 많이 아픕니다. 기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줄수 있도록 꼭 이글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더불어 많은 분들이 작게라도 도움을 주셨으면 그 작은 아이와 아빠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가정보다 더 힘든 가정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희망을 포기 하시지 말고 열심히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기원 합니다. 제가 이 사연을 보내는 것을 아직 이친구는 모릅니다. 청취자에게 들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제가 이친구에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6. 사연의 주인공은김나은의 아빠 김성은이고요김성은 전화번호는 : (010) 6437 – 5490 입니다.사연을 보낸 사람은경기도 안산에 사는 이순만입니다이순만 전화번호는 : (010) 2465 - 7220

More Rel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