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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지음. 작성자 : 이필재. 도 서 소 개. 지은이 : 박종평. 펴낸곳 : 흐름출판. 주 제 ‘인간 이순신’과 ‘영웅 이순신’을 탄생하게 한 스승 15 인을 만나다. 들 어 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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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지음 작성자 : 이필재
도 서 소 개 지은이: 박종평 펴낸곳: 흐름출판 주 제 ‘인간 이순신’과 ‘영웅 이순신’을 탄생하게 한 스승 15인을 만나다.
들 어 가 기 오만함을 버리고 겸손하고, 불혹의 이순신과 지천명의 이순신처럼 스승을 찾고 만난다면, 어제의 실패와 잘못은 작은 상처 자국에 불과할 뿐이다. 또 그런 이유로 생긴 고난은 멎진 훈장이 될 수 있다. 불혹의 지천명도 이순(耳順)도 종심(從心)의 나이도 늦지 않았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태양 아래 살고 있고,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새롭게 태어났는데 무엇을 포기한단 말인가! 포기하는 자세는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유효하다. 이순신이 만나고 배웠던 스승들을 이 책을 통해 함께 만나고, 이순신이 그의 스승들을 극복했던 것처럼 어떤 고난이라도 이겨낼 지혜를 찾아보자. “시작과 끝을 항상 같은 마음으로 해야 한다.”
1장. 전략가를 뛰어넘어 신이 되다-제갈공명 1598년 11월 19일 새벽은 7년여 동안의 길고 고통스러운 전쟁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살아서 도망가려는 일본군과 침략자를 철저히 응징하려는 이순신의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이순신에게 어느 순간 탄환이 날아들었다. 천명을 예감한 이순신이 말했다. “싸움이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러고는 곧바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제갈공명은 자신의 부대가 안전하게 후퇴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죽음보다 자신들의 사명을 더 소중히 생각했다. 이순신이 제갈공명을 닮고자 노력했지만, 마침내 제갈공명을 넘어선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제갈공명을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자신의 과업, 나라와 백성의 원수를 응징하는 것을 끝까지 다했고, 전투 중에 죽었다.
2장. 벗을 영웅으로 만든 살아있는 멘토를 만나다 – 류성룡 이순신과 류성룡은 어렸을 때부터 지기지우(知己之友)였다. 특히 먼저 과거에 급제해 화려하게 출세한 류성룡은 진흙 속에 숨은 보석이었던 이순신을 끊임없이 후원했다. 그는 호걸스러운 기풍, 무인 이순신과의 관계 덕분에 군사 문제에도 탁월한 식견을 갖춘 병법가이기도 했다. 류성룡의 지혜와 격려가 담긴 병법서와 편지들은 이순신을 불패의 장수, 성공한 경영자로 만든 지혜의 보고가 되었다. 또한 반대로 류성룡에게 적군의 동태, 민심, 민생을 파악하는 정보의 원천이 되었다. 이순신의 상세한 정보를 바탕으로 류성룡은 탁상공론에 빠지지 않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파악해 정책에 반영할 수 있었다.
류성룡과 이순신은 친구 중의 친구 류성룡이 임진왜란 당시에 실시했던 각종 군사전략과 전술,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 국가 부흥 계획 등은 이순신과는 뗄 수 없다. 류성룡과 이순신이 서로 수시로 교감하면서 상대방에게 배우고 검증한 것들이다.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와 ⟪임진장초⟫를 검토해 보면 류성룡은 이순신에게 살아있는 유일한 롤모델이며 친구였다. 유방과 장량, 유비와 제갈공명이 같은 시대에 서로 영향을 주고 상대방에게 롤모델이었던 것처럼 이순신과 류성룡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류성룡의 진정한 위대함은 이순신을 발탁했고, 그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그를 군신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류이지교(柳李之交)
3장. 이치에 도달하여 멈춤의 지혜를 알다 - 장량 이순신이 자주 말했던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라는 것이 총탄과 화살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의 이순신의 자세를 말한다면,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라고 한 과거시험에서의 답변은 사마광이 높게 평가한 장량의 처세술, 즉 성공한 장수는 권력에서 물러나 조용히 은거해야 한다는 이순신이 지향점을 보여준다. 이순신은 장량처럼 위기 때에는 입신을 해 나라를 구해야 하지만, 자신의 일이 끝나면 장량처럼 세속을 떠날 것을 결심하고 살았다. 그는 살아서는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죽어서는 신선보다 의미 있고, 신선보다 오래 사는 사람이 되었다. 떠날 때를 아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들
책으로 장량을 만나다 장량이 최고의 책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연히 만난 한 도인이 준 책 덕분이다. 이순신도 책을 통해 장량을 만났다. 책이 사람과 사람을 묶어 준 것이다. 장량이 공부한 책이 바로 ⟪황석공소서⟫, 혹은 ⟪삼략⟫, 혹은⟪태공병법⟫이라고 한다. 그 세 책 모두 장량의 처세술과 관련되어 있다. ⟪난중일기⟫에도 이순신이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많다. 이순신도 아주 드문 경우지만 “크게 취해 돌아와서 밤새도록 토했다.”, “취해 대청에서 엎어져 잤다.”라고 할 정도로 엎어지고 넘어지고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와 술에 취해 엎어지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리더 이순신의 고독이 짙게 드러난다. 슬프고 아름다운 리더의 모습이다. 인간 이순신의 고독한 리더의 모습
4장. 손자를 넘어 유일무이한 병법을 만들다- 손자 이순신이 기원전 6세기 사람인 손자를 직접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 만났다.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궁지에 몰린 적을 압박하지 말라”는 전투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적의 위험성을 이야기했지만, 이순신은 자신의 군대가 입을 피해는 물론이고 백성을 보호할 생각까지 했다. 전략가이고 장수였던 손자는 승리자체를 중시 했지만, 이순신은 승리를 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인 백성의 안전까지 전략전술에 반영한 것이다. 이순신과 손자의 발상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사례다. ⟪손자병법⟫을 살펴보면 바다는커녕 강에서의 수전 전략전술도 없다. 그러나 이순신은 ⟪손자병법⟫과 ⟪오자병법⟫이 지배하는 전쟁터에서 수전을 개척했다. 이순신처럼 오랫동안 바다에서 전쟁을 하면서 놀라운 승리를 한 사례를 서구나 중국, 일본에도 없다.
이순신이 손자를 뛰어넘은 이유 이순신도 ⟪손자병법⟫을 배우고 활용했지만, 손자처럼 시녀를 훈련시키는 수준의 이론가 손자, 참모 손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는 대장으로 모든 책임을 지고 전투에 앞장섰고, 또 백성의 생존까지 고뇌했다. 책임이 없는 참모형 전략가 손자, 그리고 책임을 짊어지고 실천하는 전략가, 실제 전투에 앞장서서 전투를 하는 장수 이순신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전쟁기술자인 손자처럼 불태의 명장이었지만, 손자를 넘어 백성을 다스리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한 진정한 경영자가 이순신 이었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처세술로 고민할 시간에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임진장초⟫를 읽고 사색해 보라.
5장.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할 수 있 다. -오자 오자는 <논장>편에서 길이 좁고 험하며, 큰 산이 가로막고 있는 곳은 “열 명이 지켜도 천명의 적이 지나가지 못한다.”했다. 또한 오자는 <여사>편에서 “목숨을 던진 한 사람은 천 명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 이순신은 오자가 말한 두 문장을 합쳐 명량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오자는 자만심이 가득한 인물이었다. 또한 처세술도 부족했다. 또한 오자는 이순신과 달리 전투에 직접 참여 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오자와 달리 지휘는 물론, 전투도 직접 참여했다. 전투를 하면서도 부하들의 활동을 확인해 논공행상에 반영했다. ⟪오자병법⟫의 가장 큰 특징은 전술의 테크닉을 중심으로 한 ⟪손자병법⟫과 달리 오자의 실전 경험에 바탕을 두었기에 인간의 심리를 활용하는 데 탁월하다는 점이다.
6장.기다림의 지혜는 독수리의 눈에서 나온다. -태공망 태공망의 ⟪육도⟫는 ⟪손자병법⟫이나 ⟪오자병법⟫같은 전투기술 차원의 병법서가 아니다. 국가 경영자 태공망, 전략가 태공망, 장수 태공망의 지혜가 함께 녹아있는 치국 경영서다. 이순신은 태공망의 지혜를 배우고 실천하면서 경영은 물론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삼략⟫에서는 군주가 성공하기 위한 방법을 “ 백성이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면 성공하지 못할 일이 없다.”라며 백성의 마음 얻기로 보았다. 이순신도 전쟁으로 굶주리는 백성의 생활 안정도 도모하는 정책을 펼쳤다. 전쟁만 중요시한 보통 장수들, 탁상공론만 하는 문신들, 백성 위에 군림하기만 하는 무능한 관리들과 이순신이 다른 점이다. 병서 한 줄 못 읽는 장수들이 대부분이었던 시대, 문관 출신들도 아전에게 맡기는 상황에서 군인이었던 이순신은 행정가와 법률가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7장. 심리전의 대가를 만나다 - 사망양저 약속은 ⟪사기⟫의 <사마양저열전>의 핵심이다. ⟪사기⟫에 등장하는 다른 장수나 전략가들은 대부분 군령, 즉 상명하복의 명령을 강조했지만, 사마양저는 명령이 아닌 약속을 중요시 했다. 약속을 어기는 것이 군령을 위반하는 원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순신에게 약속은 사마양저의 군율 혹은 명령 성격의 약속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 폭넓고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그는 어떤 의사결정을 할 때 사전에 동료나 부하들에게 먼저 묻고 의논한 뒤에 최종 결정을 했다. 함께 의논하고 듣고 묻고 결정한 것이기에 이순신 자신의 명령 혹은 지시가 아니라 상호 소통의 결과인 ‘약속’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순신은 사마양저의 삶과 말을 통해 약속의 중요성을 배웠고 인간의 욕망을 이해했지만, 사마양저의 기술을 넘어섰다. 이순신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술, 사람을 활용하기 위한 기술인 ⟪사마법⟫의 원칙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고, 인간미를 담아 활용했다.
8장. 장사꾼의 지혜를 갖추다 - 위료자 고하도에 도착한 이순신과 참모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해로통행첩이었다. 이순신은 세금 제도인 해로통행첩 하나로 기적을 만든 것이다. 세금을 활용해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로 복지를 강화했다. 고하도 시절이나 고금도 시절이나 모두 “섬이 시장이 되었다.”라고 할 정도로 경제가 활발해졌고, 수만호가 살고, 섬의 규모로 인해 몰려드는 피난민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순신은 ⟪위료자⟫를 통해 시장을 중요시한 비즈니스맨으로, 또 법률가로서의 소양을 키웠고, ⟪위료자⟫가 말하지 않은 해법을 찾아 고민하고 실천했다.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위료자⟫가 말한 경영능력, 재판능력을 갖춘 장수, 이순신과 같은 장수는 거의 없다. 대부분 용감한 장수 혹은 전략전술에만 밝은 장수들이다.
9장. 천재의 지략으로 난관을 뚫다 - 전단 ⟪사기⟫에는 많은 영웅과 탁월한 병법을 구사한 장수들이 나오지만, 전단만큼 기발하고 소문을 잘 활용한 사람은 없다. 전단의 전략은 오늘날 다양한 입소문 마케팅에도 응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순신이 호남을 거와 즉묵에 비유한 것은 나라를 되찾을 근거지가 호남이고, 자신이 전단처럼 호남을 굳게 지켜 일본군에게 빼앗긴 조선의 강토를 다시 찾겠다는 결의를 표현한 것이다. 거와 즉묵을 인용한 것은 이순신이 평상시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깊게 공부를 했는지도 보여준다. 전단의 화우지계도 이순신이 자주 활용했다. 전단과 이순신의 입소문 전략은 지혜로운 장수의 전략, 싸우기 전에 이기는 전략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이들은 스스로 입소문을 만들기도 했고 백성들에 의해, 또 적군 자체에서 소문이 만들어지고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다. 전단의 지혜가 기록된 ⟪사기⟫는 중국 전한시대에사마천이 역사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비평의식으로 집필한 불후의 명작이다.
10장. 문제와 대결하려 문제 속으로 뛰어들다-조충국 “백문불여일견”을 처음 말한 사람이 한나라 선제 때의 명장 조충국이다. 이순신은 조충국의 삶을 통해 둔전의 아이디어, 전쟁터에의 실제로 활용 가능한 구체적인 실전 ⟪손자병법⟫의 지혜, 현장중심주의를 배웠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답을 찾는 과정은 문제 그 자체에서, 문제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현장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이 순서다. 조충국과 이순신은 모두 문제가 있는 현장을 주목했고, 그 현장에서 해답을 찾아냈다. 이목은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장으로서, 북방 국경에 장기 주둔하면서 동호, 임호, 흉노를 격파했다. 그는 관리를 임명해 시장의 조세 수입을 거둬 군비로 활용했다. 이순신과 이목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시장을 활용한 것, 둔전을 경영해 자급자족한 것, 유인과 기습 협공 전술로 흉노군을 대파한 것, 평상시 훈련을 중시하고 군사들의 사기를 올린 것, 자신의 전략적 판단을 왕의 압력에도 굳게 지킨 점 등이다.
11장. 덕으로 아우르는 자의 힘을 증명하다 - 곽자의 곽자의는 문무를 겸비한 당나라 명장이자 충신이었다. 이순신처럼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지만 분양왕으로 봉해져 85세까지 살며 ‘완벽한 일생’을 산 인물이다. 773년, 토번군10만 명이 경주와 빈주를 침략했다. 빈주에 주둔 중이던 곽자의는삭방병마사혼감을 보내 방어하게 했다. 혼감도곽자의의 전략에 따라 지구전을 펼쳤으나, 선배 장수들이 그의 전략을 따르지 않아 패했다. 곽자의 다른 부하 장수 마린도 패했다. 그러나 곽자의는 부하들의 패전을 자신 탓으로 돌려 책임을 지려고 했다. 혼감과마린은곽자의에게 감동해 기회를 준다면 승리해 은혜를 갚겠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약속대로 승리해 곽자의에게 보답했다. 곽자의는 장점이 많은 인물이다. 인내심, 포용력, 절제력, 덕의 리더십이 주요 특징이다. 시련도 많이 겪었지만 시련에 굴복하지 않았다.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지만 사람들을 먼저 배려했다. 장량, 제갈공명, 이순신, 곽자의의 선택은 모두 뒷모습이 아름다운 여러 선택을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욕심을 버린 사람들이다.
12장. 영원히 기억되는 아름다운 삶을 살다 - 악비 악비의 삶을 잘 아는 우리나라 선비와 지식인들은 악비를 ‘중국의 이순신’이라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순신과 악비는 공통점이 아주 많다. 이순신과 악비는 문무를 겸비한 지장이며 솔선수범을 하는 용장이고, 때때로 감상에 젖어 시를 읊는 시인이기도 했다. 악비는금나라의 침략에 맞서 불패의 신화를 만든 영웅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평화와 사사로운 탐욕에 눈먼 남송 황제와 간신 진회등에 의해 파직당하고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다 독살된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순신은 악비를 존경해 열심히 연구하고 배우려고 했기에 전쟁 중에도 ⟪정충록⟫을 읽고 공부하면서, 류성룡이 표현한 악비의 마음과 결의를 자신의 가슴에 새겼다. 이순신은 또한 세속의 권도를 멀리한 악비의 결정처럼 권도 대신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살리는 의리를 지켜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문신이 돈을 좋아하지 않고, 무신이 목숨을 아까워 하 지 않다. 악비와 이순신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백성과 군사들의 신뢰였다. 악비와 닮은 이순신의 모습, 군사와 백성에 대한 사랑, 엄정한 군율 유지, 둔전 등의 사례는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도 무수히 나타난다. 악비는본래 육군이었다. 그러나 양요와 전투를 할 때는 수군 장수로 활약했다. 이순신도 본래 육군이었지만 전라좌수사, 수군통제사로 활약했다. 탁월한 명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혜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악비와 이순신이 보여주었다. 악비는‘막수유’라는 죄명으로 간신 진회에 의해 1142년 1월 27일 아무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비밀리에 독살 되었다. 악비의 나이 39세였다. 그 후 ‘막수유’는 중국에서 ‘모함’과 ‘억울한 사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13장.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다- 이강 이순신이 남긴 유일한 독후감은 ⟪송사⟫를 읽고 남긴 것이다. 금나라가1126년에 송을 침략했다. 그러자 흠종과피난파는이강 몰래 금나라 군영에 사신을 보내 강화를 요청했다. 이강은 이 소식을 듣고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흠종은 강화를 추진했다. 그러자 이강은 관직을 사퇴하고 조정을 떠나겠다고 흠종에게 말했다. 이순신이 독후감에서 이강을 비판한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독후감을 통해 이순신은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시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기회로 삼았다. 특히 장수 이순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여준다. 첫째, 왜적과는 휴전할 수 없다. 둘째, 아무리 주장해도 안 되면 죽음으로 주장한다. 셋째, 그것도 안 되면 강화에 참여해 나라를 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조리한 현실은 도피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강 처럼 도망간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는다. 이순신은 말처럼 최선을 선택할 수 없다면 차선과 차차선 이라도 준비해 놓았다가 실천해야 한다.
14장. 기적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미소 짓는다- 유기 <유기전>에는 금나라와 결전을 결심한 유기가 불퇴전의 결의를 표현한 글이 나온다. 유기는 자신의 가족이 사는 집에 나무를 쌓아 놓고 경비 군사에게 말했다. “빠져나가다가 불리해지거든 즉시 우리 집에 불살라 적의 손에 모욕당하게 하지 말라.” 그런데 이순신은 <유기전>에 나오는 유기의 기발한 전술이나 다른 많은 이야기 대신 왜 허청의 이야기, 유기의 결의를 기록해 놓았을까? 유기와 이순신과 같은 리더의 목숨을 건 솔선수범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 죽음이 두려운 사람들의 꺼져가는 열정에도 불을 지르기 쉽다. 유기와 이순신의 불타는 열정이 백성과 군사들의 마음에 등불을 질렀고, 그들은 함께 승리했다.송나라와 금나라의 전쟁에서 이순신의 명량대첩과 같은 기적을 만든 전투가 ‘순창대첩’이다. 유기는 천명의 군사로 10만 명의 금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15장. 처음과 끝을 한 마음으로 성웅이 되다- 순자 이순신을 불패의 명장, 탁월한 경영자, 천재 지략가로 만들고 삶까지 비슷하게 살게 한 멘토와롤 모델은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최고점인 ‘리더 이순신’을 만든 멘토는 순자다. 이순신은 일심과 동심으로 전투를 했고 부하들과 함께했지만, 전투가 끝나면 언제나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하라(終始如一, 종시여일).”라고 당부했다. 순자가 말한 왕자의 병법의 핵심은 어짊이다. 어짊은 리더 스스로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일하고, 현명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며, 인재를 발탁해 적절한 역할을 주고, 힘의 근원인 백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질다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것은 아니다. 상벌을 분명하게 집행하고, 법과 질서를 확실하게 지키는 것이다. 순자는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마음을 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순신도 늘 마음을 합치는 것을 가장 우선했고, 군사와 백성들에게 속임수 없이 진심으로 대했고, 공로와 이익도 원칙에 따라 사실에 입각해 주었다.
순자가 말한 장수의 도리- 육술(六術) 첫째, 의심을 버리고 잘못 행동하지 않고, 후회 없도록 하는 것. 둘째, 제도와 호령, 정령이 명확하고 엄격하며 신상필벌에 믿음이 있을 것. 셋째, 평소에 진지와 보루를 철저히 구축하고, 철저한 경비를 할 것. 넷째, 군대 이동 시 안전, 신중, 신속해야 할 것. 다섯째, 간첩을 침투시켜 적군의 정확한 정보를 얻을 것. 여섯째, 전투 시 잘 아는 전략전술을 사용하고, 의심스러운 전략전술은 사 용하지 말 것.
순자가 말한 장수의 도리- 오권(五權) 첫째,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기 싫은 일도 앞 장서서 할 것. 둘째, 승리에 급급해 패배를 대비하는 것을 잊지 말 것. 셋째, 위엄을 너무 부려 적까지 가볍게 보지 말 것. 넷째, 이익만 생각하고 해로움을 예상하지 않는 행동은 하지 말 것. 다섯째, 모든 일은 심사숙고 하며 재물을 쓸 때는 충분히 쓸 것.
순자가 말한 장수의 도리- 삼지(三止) 첫째, 군사들을 위험에 빠뜨려 죽을 수 있는 명령은 받지 말 것. 둘째, 이길 수 없는 적을 공격 명령도 받지 말 것. 셋째, 장졸과 백성을 속이는 명령을 받지 말 것. 순자는 육술, 오권, 삼지를 신중하고 겸손하게 실천하는 장수를 신명과도 통하는 천하의 장수라고 했는데, 이순신이 그런 장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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