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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센병 시책의 현황 ― ― 일본통치하에서 해방까지의 소록도

리츠메이칸대학대학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요시다 사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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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센병 시책의 현황 ― ― 일본통치하에서 해방까지의 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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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entation Transcript


  1. 리츠메이칸대학대학원 첨단종합학술연구과 요시다 사치에 일본은1996년 한센병환자(한센인)를 격리하는 법률 「나병예방법」이 폐지되었다.법제정으로부터 약 90년.일본의 한센병 환자들은 이때까지 많은 고통을 받았겠지만, 한국에서는 「나병예방법」에 해당하는 법률 「전염병 예방법」은 1963년이미사실상 폐지되었다. 일본에서는이 한국의 「과감한 결단」을 칭찬하는 소리가 높지만폐지라고 하는 부분만이 클로즈업 되어 실제, 한국의한센병 시책에 대한내용은 별로 전해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보고자는 한국 유일의 한센병요양소가 있는 소록도병원을 방문해 오랜 세월 소록도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기서 파악되어 진 것은일본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번은, 1945년까지의 한국시책을 검토하고 지금의소록도를 소개하려 한다. 1 2 4 3 일본 통치하였던 1916년소록도갱생원(현:병원)이 지어졌다.물론, 원장은 일본인이다.재단법인 우방협회가 1985년에 발행한 책자에는 모두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본제 「조선의 구나(救癩나환자를 구함)사업과 소록도갱생원」은그 인간애와 규모의 웅대함에 있어 세계의 눈과 귀를 모으고우리가 조선 통치의 본질을 표상 하는 선정으로서 칭송할 수 있던총독 통치가 자랑해야 할 위업이다」(1985재단법인 우방 협회).즉, 일본은 구나=통치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은 분명하다.일본에 있어 「구나의 아버지」라고 불린 미쯔다 겐스케는 1949년 「나병병리강습회」에서 「조선인의 나병 환자에 대한 대책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발언했다.이것은 「일본에 조선의 나병환자가 침투해 들어오지 않도록소록도에의 격리 정책을 더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의미였다.이와 같이 미쯔다는 해방 후의 조선나병 정책에도 관여해, 절대권력을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한센병 시책의 현황――일본통치하에서 해방까지의 소록도 5 5명의 일본인 원장 6 1916년 소록도병원은 소록도자경의원이란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초대 원장은 육군 군의관이었던 아리카와 토오루였다.이후,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진 1945년까지 역대 원장 5명은 당연히 일본인이었다.통치하에 있어 의원내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1932년, 후에 원장이 되는 당시의 위생 과장 니시카메 산케이등은 「조선나병 예방 협회」를 설립했다.통치하 조선의 나병 정책은 여기서부터 크게 변모하게 된다.그러나민간으로써의 운동 등은 총독부에서 압박을 가하고 있어,이 「조선나병 예방 협회」는 일본의 것과는 다른 성질을 가지는 단체였다. 즉 총독부의 지배하에 있던 단체였던 것이다.민간인에게서 한센병환자를 위한 기부금을 모아, 총독부가 관리를 했다. 국가 권력이 조선인 한센병 환자를 격리, 수용을 전문적으로 맡고, 그 막대한 비용은 민간인의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5명의 역대 일본인 원장 속에서 제2대 원장인 하나이 젠키치는 유일하게조선인 한센병 환자에게 존경받은 인물이었다. 하나이는 특히 환자들의 생활개선을 위해 노력했다고 여겨지고 있다.그러나 하나이의 「선의」가, 즉 「격리가 최선의 방법이다」고 믿었고, 그것이 소록도 섬 전체를 매수 해 세계 제일의 한센병환자 격리의 섬을 완성해 버렸다고 하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그러나인터뷰중에서도 나타난 사실이지만하나이에 대한 평판은 매우 좋았고 인품이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한센병 환자에 열심히 였던 것은 기념비 건립등에서도 알 수 있었다. 덧붙여 제4대 원장 스오우 마사키는 환자들에게 비판 받고 있었다.여기에서 당시 총독부측은 스오우를 「사랑의 정신을 가진 나환자이며, 범인 이춘상은 흉악한 인물이었다.」고 발표했다.이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고찰하고자 한다. 7 8 9 10 현재의 소록도 한국에서 현재 국립 병원은 소록도를 시작으로 4개소가 운영되어지고 있다.강제 격리는 없어졌지만 한국에서도 아직 한센병 환자에 대한 편견은 강하며 아직 일반 사회안에 자연스레 받아 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다. 1946년부터 자립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해 사회복귀정책의 일환으로1961년,「정착마을」사업이 시작됐다. 흥미로운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한국은 한센병 환자들의 자립 생활을 장려한 것 에 반해,일본에서는 반대로 억압이 행해져가고 있었다. 향후 보고자는 한국 정착마을의 현상을 계속 조사해 갈예정이다. 소록도는 현재육지와 섬을 다리로 (사진 1을 참조)연결해자동차로 통행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아름다운 모래 사장과 바다가 펄쳐져관광객도 많이 방문한다고 한다.그러나, 이전에는 그 바다를한센병 환자가 건너와 소록도에격리되고 있던 사실을아는 사람은 적은것 같다. 일본에서의 재판(국가배상소송)을 통해소록도에서도 원고단이 꾸려졌다.물론 「일본」에 대한 배상 청구이다.결과적으로는 패소했지만 이것을 계기로 「한센병 보장법」이 개정되게 되었다. 원생 자치회장은「원고단의 변호를 해 준 일본인 변호사들은 우리를 위해서 맞서 싸워 주었다. 당분간은만나는 일이 어렵지만만약 만날 일이 있으면 항상 감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록도와 함께 대만의 낙생원도동시에소송을 제기했지만당시 같은 일본 통치하에서의부당한 격리 정책에 대한 호소였음에도 불구하고 낙생원은 승소, 소록도는 패소하고 말았다. 일본과 같이 소록도에서생활하는 사람들도 지금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즉 「당시 한센병 당사자」는점점 줄어 들고 있다. 그리고 점점 세상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이 사람들을 위해서,이 잔혹한 역사에,대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이 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앞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11 12 1:2009년 완공된 육지와 소록도를 잇는 다리에서 본 경치.일본과같이 「회복의다리」로서의상징일까하고생각했지만소록도병원원생자치회장은「이 다리는보도는없고 자동차용 다리로 만들어져 한센인은거의자동차를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없다」라고했다. 이 다리의완공으로인해그전까지매일 40회 왕복했던배도4회로 줄여져, 이 다리는소록도에주거하는 한센인을위해서는 만들어졌다고말할수가 없다 .2:소록도내의안내도. 섬 주위는 500만 평방 미터.3:섬 내에 있는자료관에는각국한센병에 관한자료가소장되어 있다. 4:2대째 원장인육군군의관하나이젠키치의기념비.5:지금도 남아 있는는 독방의외관.6. 국가에 등록된 문화재청의 유형 문화재 7:독방의 실내. 당시 그래로 일반인 공개. 8,9,10:검시실내. 당시의 수술대. 당시 거세수술이나고문이행해졌다고 한다.11:소록도의 해변. 해변은아름답고, 최근에는관광객도많이방문하고 있다.12:소록도병원외에만들어진한센병환자들의커뮤니티, 통칭 「정착마을」.한국내에는 약 60개소가 존재하고있다. 고향을 떠나 이 곳에 정착한 한센병 환자들은 양계, 양돈의 축산업에 종사하며 생활해 왔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고령화가진행되어유령마을과 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참고자료・藤野豊 1993 『일본 파시즘과 의료――한센병을 둘러싼 실증적 연구』 岩波書店・———— 2001 『근현대 일본 한센병 문제 자료집성제2권』 不二出版・吉田幸恵 2010 『1950년대 이후 일본과 한국의 한센병 시책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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