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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서정 문학의 수용과 생산 [2] 화자와 정서. 02 부벽루. 목은 이색의 생애와 작품 세계. 1. 이색의 생애. 1328 년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 괴시리에서 출생 . 1341 년 진사 성균시에 수석으로 급제 , 이후 16 세의 나이에 별장 ( 정 7 품 ) 의 벼슬을 받는다 . 1348 년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 연구 1351 년 부친상으로 귀국. 이색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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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정 문학의 수용과 생산[2] 화자와 정서 02 부벽루
목은 이색의 생애와 작품 세계
1. 이색의 생애 • 1328년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괴시리에서 출생. • 1341년 진사 성균시에 수석으로 급제, 이후 16세의 나이에 별장(정7품)의 벼슬을 받는다. • 1348년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 연구 • 1351년 부친상으로 귀국.
이색의 생애 • 1352년 전제(田制) 개혁, 국방 강화, 교육 진흥, 불교 억제 등 당면 정책을 왕에게 건의했다. • 1353년 향시(鄕試)와 정동행성(征東行省)의 향시에 장원 급제. ◀목은 이색의 초상 (보물 1215호)
이색의 생애 • 1354년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가서 회시(會試)에 장원,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하고 국사원편수관 등을 지내다가 귀국. • 1355년 원나라의 한림원에 등용되었다. • 1356년 귀국해 이부시랑(吏部侍郞) 등 인사행정을 주관하며 정방을 폐지하고, 이듬해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 때는 3년상을 제도화했다.
이색의 생애 •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의 남행을 호종, 일등공신이 된 후 좌승선(左承宣)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 1367년대사성이 되자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김구용·정몽주·이숭인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 1356년한산군에 책봉된 후에는 신병으로 관직을 사퇴했으나 1375년 우왕의 청으로 다시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역임했다.
이색의 생애 • 1377년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의 호를 받고 우왕의 사부가 되었다. • 1388년철령위 사건에는 화평을 주장하고 이듬해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강화로 유배되자 조민수와 함께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의 세력을 억제하려 했으나 이성계가 득세하자 장단·함창 등지에 유배되었다. ▲이성계
이색의 생애 • 1391년 석방되어 한산부원군에 책봉되었으나 다시 여흥 등지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 1395년 조선 개국 후 인재를 아낀 태조가 한산백(韓山伯)에 책봉했으나 사양했다. • 1396년 여주 신륵사에 가는 도중 사망. ▲이색의 묘 ▲이색 기념관
2. 이색의 작품 세계 • 내면적 독백과 당면한 시대의 증언 • 이색의 시에는 자신의 인생 역정이 투영되어 있어 자기 독백적 성격이 강하다. 제목만 보더라도 유감(有感)․독음(獨吟)․자영(自詠)․자조(自嘲)․술회(述懷) 등이 많이 눈에 띄며, 기행과 견문의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당대의 역사적 사건이 직접 다루어지거나 내면적으로 관련된 경우가 적지 않은 그의 시에서는 시대의 증언과 함께 시인의 고뇌를 감지할 수 있다.
이색의 작품 세계 • 민생 현실에 대한 관심 • 이색의 시 세계는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할 정도로 소재의 폭이 광활하다. 특히 민족 생활에 접근해 풍속을 노래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팔관(八關)’, ‘관격구(觀擊毬)’, ‘구나행(驅儺行)’, ‘단오석전(端午石戰)’, ‘산대잡극(山臺雜劇)’ 등이 당시 사회에서 행해지던 풍속을 소재로 쓴 작품으로 민족의 생활 풍속을 보여 주는 소중한 내용이어서 일찍이 민속학의 자료로 많이 원용되었다.
이색의 작품 세계 • 사대부적 시학을 구현한 자연의 성찰 • 사대부적 시학으로 쌍벽을 이룬 자연시의 범주에서 이색이 성취한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작품 중 명편으로 꼽히는 ‘부벽루(浮碧樓)’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시에서는 여러 인문적ㆍ자연적 대상물이 역사적 정조와 결합해 깊은 감명을 준다.그가 젊은 시절에 지은 ‘한산팔영(韓山八詠)’ 역시 자연시의 특수한 범주로써 구체적 생활공간을 심미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3. 서정문학의 수용과 생산[2] 화자와 정서 02 부벽루(浮碧樓) 작품 정리
학습 목표 • ‘부벽루’는 고려 말의 문신인 이색이 고구려의 유적지 부벽루에 올라 지난날의 영화롭던 옛 왕조를 회상하며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의 유한함에 대해 지은 오언 율시 이다. 작품을 읽고 화자와 작가의 관계를 살펴보고, 작품에 들어나 있는 화자의 정서를 살펴보도록 하자. 또 화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어떤 표현법을 쓰고 있는지 알아 보자.
작품연구 • 갈래: 한시(漢詩), 오언율시(五言律詩) • 성격 : 서경적, 회고적, 애상적 • 운율: 한 행에 다섯 글자를 배치하고 8행으로 된 시로서 2, 4, 6, 8 행의 끝에 각운적 운율 배치 • 어조: 애상적 어조 • 제재: 부벽루 • 주제: 인간 역사의 무상함에 대한 한탄
작품 연구 • 특징 • 자연의 영원함(달, 구름, 산, 강)과 인간 역사의 유한함을 대비시키면서 쓸쓸한 감회를 자아냄. • 향토성과 민족적 성격이 드러남.
글쓴이 소개 이색(李穡 1328~1396) •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와 함께 고려 말의 ‘삼은(三隱)’으로 불림. • 고려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며 조선의 건국을 끝까지 반대하다 조선 건국 후 두문불출하며 지냄 • 꾸밈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활달한 기상을 담은 남성적인 시 • 주요 저서 “목은시고(牧隱詩藁)”, “목은문고(牧隱文藁)” 등
핵심 강의 • ‘부벽루’의 시상 전개 수련(首聯) 1, 2구 : 여행 중에 부벽루를 방문함. 함련(頷聯) 3, 4구 : 부벽루 주변의 쓸쓸한 자연 풍경 경련(頸聯) 5, 6구 : 고구려의 후손인 주몽을 회상하고 인생의 무상감을 토로함. 미련(尾聯) 7, 8구 : 자연의 의구함에 대한 감회
핵심 강의 • 부벽루의 시상전개 : 선경후정(先景後情) 昨過永明寺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暫登浮碧樓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城空月一片텅 빈 성엔 조각달 떠 있고 石老雲千秋천 년 구름 아래 돌은 늙었네 麟馬去不返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니 天孫何處遊천손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 長嘯倚風磴돌계단 기대어 길게 휘파람 부노라니 山靑江自流산은 오늘도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네
전구(轉句) • 후구(後句) 핵심 강의 • 후정 : 주관적 감성이나 정서를 표현(주제나 사상 등 작자의 창작 의도) • → 유적지와 주변 풍경을 통해 느끼는 화자의 심정을 노래함 • 선경 : 객관적 사실이나 정경 제시. • → 고구려의 옛 유적지와 주변의 풍경을 노래함
핵심 강의 • 율시(律詩) • 중국 당대(唐代)에 정해진 한시의 한 체. 8구로 되어 있으며 1구가 5자인 오언율시와 7자인 칠언율시의 두 가지가 있다. • 2구씩 짝을 이뤄 첫째 연을 수련, 둘째 연을 함련, 셋째 연을 경련, 넷째 연을 미련 이라고 한다.함련과 경련은 반드시 대구를 이룬다. • 율시의 변형으로 대구 부분이 3연, 4연으로 길어진 것을 배율 또는 장률 이라고 한다.
핵심 강의 • ‘산중문답’의 시어 이해
핵심 강의 • 화자의 태도 옛 고구려 고려 역사의 무상함과 망국에 대한 안타까움과 탄식 동명왕을 생각하며 고려의 현실을 반성하고 기울어 가는 고려가 다시 웅성해지기를 바라는 우국충정의 염원
3-[2] 화자와 정서 • ‘부벽루’를 감상하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 (1) 다음 설명을 참고하여 이 시의 시상 전개 과정을 아래의 표에 따라 정리해 보자. 부벽루 주변의 쓸쓸한 자연 풍경 묘사 • 동명왕을회상하고인생의무상감을 느낌 • 의구한 자연에 대한 감회 표명
(2) 이 시에서 ‘부벽루’는 어떤 기능을 하는지 말해 보자. 예시 답| 영화롭던 옛 고구려의 모습이 사라지고 퇴락한 빈 성이 되어 버린 ‘부벽루’는 화자에게 인간 역사의 유한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주변 자연의 영원함과 대비되어, 화자로 하여금 인생무상의 정서로 인한 쓸쓸함과 애상감을느끼게 한다.
(3) 이 시의 작가는 국운이 기울어 가던 고려 말에 이 시를 썼다. 당시 상황에 비추어 작가가 이 시를 쓴 이유는 무엇일지 작품의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해 보자. 예시 답| 작가는 고구려의 옛 도읍지인 평양의 부벽루에 올라 지난날의 찬란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텅 빈 성만 남은 평양성을 바라보며, 고구려의 옛 영웅인 동명왕을 떠올리고 있다. 당시는 원나라의 오랜 침략으로 고려의 국운이 쇠약해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작가는 동명왕과 같은 영웅이 도래하여 고려의 국운이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부벽루’에 나타나 있는 정서와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 (1) 부벽루에서 평양성을 바라보는 화자의 감정은 어떠했을지 말해 보자. 예시 답| 화자는 자연의 영원성에 대조되는 인간의 유한성을 느끼면서 인생의 무상감에 쓸쓸함과 애상감을 느꼈을 것이다.
(2) 이 시는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함련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자. 시어 조각달, 구름 텅 빈 성 대조 의미 인간 역사의 유한함 자연의 영원성 대조
(3) 이 시의 함련에 나타난 ‘대조’의 구조는 경련과 미련의 대조로 확대된다. 경련과 미련의 대조 관계를 보여 주는 시어들을 각각 제시해 보자. 대조 시어 기린마, 천손 산, 강
다음 두 시조를 감상하고, 화자의 정서가 어떤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는지 비교해 보자. 예시 답| (가)에는 기울어져 가는 고려 왕조와 새로 일어나는 조선 왕조 사이의 역사적 전환기에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국운이 쇠퇴해 가고 충신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 대한 화자의 안타까운 정서가 ‘백설’, ‘구름’, ‘매화’, ‘석양’ 등의 상징적인 시어를 통해 표현되어 있다. (나)는 고려의 유신인 작가가 황폐하게 변해 버
린 고려의 왕궁 터를 돌아보면서 느끼는 비통한 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고려 왕조를 상징하는 ‘만월대(滿月臺)’는 ‘추초(秋草)’로, ‘왕업(王業)’은 ‘목적(牧笛)’으로 연결되면서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로 무상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서경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는 종장에 이르러서 ‘눈물’이라는 시어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